3대째 이어져 오는 영암을 대표할 기업 새실오브앰비언스 이야기
창업주인 할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3남으로 새실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투철한 개척정신과 워낙에 식물을 좋아해서 전국을 누벼 각종 묘목과 식물을 모았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던 시대, 논에 벼를 심어도 모자랄 판에 나무를 심는 현장을 본 마을 어른들은 “빌어먹을 놈”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그러나 묘목사업은 이웃 마을사람들까지 전부 품삯을 받고 일해도 일손이 모자랄 만큼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조부님은 접목법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사업의 큰 성공에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카페 주변에 식재된 수목들(목련, 단풍나무 등)은 전부 그의 손을 거쳐 60년간 자라왔고 2016년부터 저와 아버지가 조경계획을 세우고 재배치한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동일수령의 품종을 보유한 업체는 없습니다. 조부님의 모든 기술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전수되었습니다.
고급분재와 관상수 위주의 사업은 아버지가 이은 후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과수원사업(누리농장)을 더하게 됩니다. 일본 분재계의 원로가 직접 일본으로 데려가 가르치고 싶다고 조부를 설득했을 만큼 두각을 보인 아버지였지만 90년대 한국의 분재시장은 쇠퇴기에 이른 시대였습니다. 가꿔온 정원수와 분재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력사업을 과수로 전환하여 30년간 단감을 생산하는 농장으로 자리 잡았고 뜨거운 열정과 노력을 거듭한 끝에 과수원은 가락공판장에서 매년 경매 1위를 놓치지 않는 주력사업이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태어나보니 환경이 그러했고, 도시에서 직업 활동을 하는 중에 정원을 맡아달라는 지인의 의뢰를 시작으로 틈틈이 주말에 시간을 내어 맡은 현장에 내려가 정원을 만드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이거구나, 모든 것을 걸어봐야겠다”고 다짐한 후 특기를 살려 어떤 사업을 해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no.1 보다 only.1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고 최고보다는 뚜렷한 개성과 대체 불가한 무엇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생산만 하는 농업보다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농업은 “공간을 만드는 농림업” 이었습니다.
한 동안 정부 정책으로 활발했던 6차산업 새실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나가려 합니다.
참여하는 농업, 즐기는 농업 문화가 있는 농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요람이 될 새실오브앰비언스는 곧 영암의 대표 기업이 될 것입니다.